오는 4월 16일부터 시작되는 '2022 KHT 그랑프리'를 앞두고 몸풀기(?)로 경기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2022 KHT 그랑프리'는 KHT(한국고갯길여행)이 주최하는 풀타임 백패킹 레이스로 1년 총 10회, 정해진 무게의 배낭을 메고 KHT가 선별한 전국의 길을 걷는 시합이다. 총 10회의 대회마다 1~3등과 완주자는 승점을 획득하고 획득한 승점의 총 합으로 우승과 2, 3등이 가려진다. 물론 같은 날 같은 길을 백패킹 없이 가벼운 짐으로 걷는 프로그램도 별도 마련돼 있다.

2022 KHT 그랑프리
2022 KHT 그랑프리

취재를 위해 모든 대회를 참석해야 하는 만큼 겨우내 체력을 비축하고 매일 자전거를 타는 등 나름(?)의 준비를 했으나 실전 감각을 위해 따끈따끈한 경기둘레길로 향했다.

경기둘레길은 경기도 15개 지역, 60개 코스로 구성된 860km의 장거리 여행길이다. 기존의 길을 구슬 꿰듯 엮어 경기도 외곽을 한바퀴 도는 순환 둘레길로 지난해 가을 전면 개통 후 올 3월 첫 완주자가 탄생했다.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가보다 할 수 있겠지만 한 번이라도 걸어본 경험이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저절로 엄지가 올라갈 것이다.

경기둘레길 파주 5코스 동패사거리
경기둘레길 파주 5코스 동패사거리

오늘 선택한 코스는 동패지하차도(고양시)에서 성동사거리(파주시)까지 이어지는 파주 5코스이다.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집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다. 멋있는 길을 찾아 멀리 이동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의 목적은 몸풀기이므로 코스의 시작 지점까지도 걸어가보고 싶었다. 물론 시작과 동시에 후회가 밀려왔다. 부쩍 더워진 날씨 탓에 출발하자마자 이마에 땀이 맺혔다.

무엇보다 가장 큰 실수는 물통을 두고 왔다는 점이었다. 가다가 사면 되겠지 했는데 왠걸, 코스 출발과 동시에 심학산을 오르더니 파주 출판단지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30분 동안 편의점을 볼 수 없었다. 걷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물이다. 코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면 반드시 물을 챙겨야 한다. 

출발지인 동패지하차도에서 경기둘레길 1코스부터 걷고 있다는 걷기여행자를 만났다. 아직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스탬프북에 찍힌 도장들이 꽤 많았다. 김포고양 4코스에서 일정을 마무리하신 관계로 5코스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힘차게 스탬프를 찍는 모습에서 완주의 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둘레길 스탬프북은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우편으로 받을 수 있는데 제작된 책이 모두 소진돼서 약 한 달 정도 후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심학산 진입로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심학산 진입로

경기둘레길 파주 5코스는 평화누리길 6코스와 노선이 같다. 혹시 표식을 잊는다해도 평화누리길 표식을 보고 가면 된다. 하지만 빨간색과 초록색의 리본, 그리고 빨간색과 파란색의 화살표와 명판, 나무 색의 안내명판이 제대로 설치돼 있어서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은 없었다. 

출발과 동시에 오르는 심학산의 경우 심학산 둘레길과 코스가 같은데 간혹 샛길이 넓어 헷갈리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리본이 보이지 않으면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금세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스마트폰에 두루누비, 트랭글, 램블러 등 걷기 앱을 설치하면 코스에 맞게 따라가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심학산 낙조전망대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심학산 낙조전망대

해발 194m의 심학산은 자유로와 가깝고 파주 교하, 운정, 고양시 가좌동과 인접해 있어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의 대표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자유로와 한강, 김포를 볼 수 있으며 특히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배밭정자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배밭정자

파주 5코스에는 심학산 정상이 포함돼 있지 않지만 배밭정자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얼마 걸리지 않아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지난 달에 정상을 올랐기 때문에 과감히 패스하고 길을 재촉했다. 

배밭정자에서부터는 심학산을 내려가는 코스로 길 아래 위치한 서패동에는 음식점과 카페가 많이 있어 다양한 메뉴 중 입맛대로 골라서 한끼를 즐길 수 있다. 드라마 촬영을 했던 카페도 볼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파주 출판단지가 나온다. 도로변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과 개나리가 힘을 내라고 손을 흔들었다. 편의점에서 이온음료를 사서 원샷을 하고 물 한 병을 들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산길을 걷다 인도를 걸으려니 서서히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파주출판단지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파주출판단지

출판단지 끝에서는 평화누리 자전거길과 같은 길을 걷는다. 자유로를 따라 달릴 수 있는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라이더들에게 늘 인기 있는 코스이다. 다만 도보길과 나눠진 구간이 극히 짧아 나머지 구간은 함께 지나야 하다보니 조금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자전거가 살짝 부럽기도 했다. 

출발한지 3시간이 지나자 걸음이 느려지고 들고 온 DSLR 카메라가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 마시는 주기가 잦아졌다. DSLR 대신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마저도 점점 횟수가 줄었다.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평화누리자전거길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평화누리자전거길과 보행로

자유로를 지나 송촌리로 들어섰다. 마을 사이로 난 길에서 동네 개가 짖으며 따라왔지만 쫓을 힘이 없었다. 사납게 짖던 개는 힘없는 여행자를 쉽게 놔주었다.

4시간이 넘어가자 땅만 보고 걷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때 외에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무슨 자존심인지 한 번에 걸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쉬지 않고 걷고 싶었다. 사실은 쉬면 일어나기 싫을것 같아서 혹시 일어나지 못할까봐 계속 걸어야 했다.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성동사거리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성동사거리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성동사거리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성동사거리

통일동산을 지나자 저 멀리 성동사거리가 보였다. 파주 5코스의 종착지였다. 다시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목표가 시야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이제 다 왔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도착했다. 총 15. 8km, 5시간 20분만이었다. 제대로 몸풀기를 마친 셈이다.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종점 스탬프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종점 스탬프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종점 파주6코스 시점 스탬프
경기둘레길 파주5코스 종점 파주6코스 시점 스탬프

성동사거리는 다양한 메뉴를 가진 음식점이 즐비하다. 코스를 마친 여행자들이 허기를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식사를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집에서 전화가 왔다. 괜찮냐는 아내의 물음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데리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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