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속화가 신윤복의 작품과 함께하는 '화중지남'

요즘 어린이들(?)은 등산, 걷기, 산행 등 단순한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어린이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집 초등학생은 그렇다. 그럼에도 지난 구정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해발 194m)의 정상에 함께 올랐다는 것은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후 호시탐탐 함께 걸을 기회를 엿보던 중 서울 양천구에서 마련한 미션추리여행 소식을 접했다. 풍속화의 거장 신윤복의 작품과 IT기술을 접목해 신정산 둘레길을 걸으며 미션을 해결하는 일종의 야외 방탈출 게임이라고 했다. 

방탈출은 주로 실내에서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며 방을 탈출하는 게임으로 몇 년 전부터 MZ세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템이다.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TV에서 본 봐로는 문제가 만만치 않았고 문제를 풀지 못했을 때 갇히는 경험이 썩 유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야외 방탈출이라니 못 풀어도 갇힐 일은 없을테니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가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려울까 싶었다.

주말 전부터 야외 방탈출에 대한 얘기를 계속 흘렸고 어느 순간 딸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션 추리여행의 테마가 풍속화의 거장 신윤복의 그림이라는 것에 아내도 흥미를 보였다. 결국 딸과 엄마가 동시에 해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큰 기대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뭐, 한 번 해든가 정도. 

신정산 둘레길. 야외방탈출 화중지남
신정산 둘레길. 야외방탈출 화중지남

지난 2016년부터 7년에 걸쳐 조성된 신정산 둘레길은 총 2.7km로 남명초에서 다락골, 장수초, 정랑고개, 다목적체육관을 지나 남명초로 돌아오는 순환 코스이다. 대부분이 무장애 데크길(2.4km)로 조성돼 있고, 일부 0.3km 구간이 흙길 산책로이다. 무장애 데크길은 경사도가 8% 미만으로 조성돼 있어 누구나 부담없이 걸을 수 있다.

신정산 둘레길 무장애 데크길
신정산 둘레길 무장애 데크길
신정산 둘레길, 흙길 산책로
신정산 둘레길, 흙길 산책로

미션추리여행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정3동 주민센터로 가야한다. 입구를 중심으로 우측 자전거 주자창 쪽에 위치한 자판기를 통해 탐험키트를 구매하면 된다. 자판기라는 말만 듣고 현금을 준비했으나 카드로 구매할 수 있다. 

탐험키트에 있는 지도와 물건들은 미션을 해결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니 꼭 지참하고 있어야 한다. 탐험키트 속 큐알코드를 스캔하고 출발장소인 가로등 2-23으로 찾아가야 한다. 가로등 2-23은 둘레길 내에 있는 가로등이다. 우리 가족은 운 좋게 한 번에 찾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보니 둘레길이 아닌 일반 도로에서 출발지를 찾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유경험자로서 둘레길로 가라고 오지랖을 부렸다.

신정산 둘레길, 미션추리여행 탐험키트.
신정산 둘레길, 미션추리여행 탐험키트.

QR코드를 스캔 후 탐험키트 내에 있는 코드를 입력하면 TTS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다. TTS프로그램은 크게 힌트, 단서함, 채팅으로 이뤄져 있다. 채팅을 통해 기본적인 스토리와 미션이 주어지고 해당 장소에 가서 미션을 해결하면 된다.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중간 중간 힌트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첫 번째 문제를 만났을 때 오호, 이것 봐라 싶었다.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다. 새로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어른 둘과 아이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읽은 후 각자의 방법으로 답을 찾았다. 하다보니 딸보다 엄마 아빠가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스토리가 있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다. 숨겨진 암호를 찾았을 때는 성취감이 느껴졌다. 미션 장소에 있는 안내 문구 하나하나를 꼼꼼이 읽다보니 양천구에서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스토리에 반전도 숨어있다. 

신정산 둘레길, 화중지남
신정산 둘레길, 화중지남

신정산 둘레길은 그냥 걸을 경우 어른 걸음으로 평균 1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지만 미션을 해결하며 걷다보면 2시간은 30분에서 3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런데 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미션 유형이 단순히 암호를 찾는 게 아니라 음성 메시지, 유튜브 동영상, 퍼즐 맞추기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마지막 문제를 다 풀고나니 어느새 신정산을 한 바퀴 다 돌고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딸은 진짜 재미있었다고 쌍엄지를 치켜들었다. 

신정산 둘레길, 장군정
신정산 둘레길, 장군정

오는 길에 보니 탐험키트를 든 초등학생 무리와 가족들이 보였다. 이정도 콘텐츠라면 아무리 산을 싫어하는 아이라 해도 산을 누비고 다닐 것 같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2,000원에 온 가족이 3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요즘말로 가성비 갑이라고 할 수 있다. 딸은 다음 야외 방탈출은 뭐냐고 물었다. 이런 콘텐츠가 둘레길마다 있다면 아이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주말에 어디 갈지 아이들과 의견이 갈리는 집이 있다면 야외 방탈출, 신정산 둘레길 미션추리여행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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