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제천리길은 '사람, 문화, 경관의 길'
- '인제'라는 지명이 주는 선입견만큼 어렵거나 위험하지 않은 길
- 교통과 숙박 등 다양한 인프라를 갖추어나가 지속가능한 명품길을 목표할 것

(사)인제천리길의 사무실 풍경
(사)인제천리길의 사무실 풍경

강원도 내륙은 의외로 트레일, 즉 둘레길이 활성화 되어있지 않다. 둘레길 보다는 등산 그 자체를 즐기는 이들이 찾는 고장이며 백두대간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있기에 여느 시/도만큼 둘레길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이나 문화가 크게 부흥한 편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 굴지의 길 중 하나인 강릉 바우길, 대한민국 대표 걷기도시 원주시에 속한 원주굽이길과 이제 막 완공되어 벌써 수 많은 사람들이 걷고있는 치악산 둘레길 등 강원도를 대표하는 트레일들은 선명한 존재감으로 내륙의 든든한 트레일 문화를 선도하고 지키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인제천리길이다.

온전히 개인의 생각과 시작으로 첫 걸음을 뗀 인제천리길은 ‘하늘내린 인제’라는 지역 슬로건 만큼이나 산과 강으로 이루어진 녹음 그 자체 속에 뻗어있다. 천리길이라지만 이미 천리를 훌쩍 넘은 그 길은 당당하게 강원도를 대표하는 트레일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로드프레스는 (사)인제천리길 사무실을 방문, (사)인제천리길 대표인 김호진 대표를 만나 인제천리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어보았다.

(이하 로드프레스는 ‘ROAD’, (사)인제천리길의 김호진 대표는 '김'으로 표기한다.)
 


인터뷰 중간중간 문의에 응답중인 김호진 대표
인터뷰 중간중간 문의에 응답중인 김호진 대표

ROAD : 먼저 귀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하다. 원주를 지나 인제를 오면서 창 밖의 풍경에 무척이나 가슴이 뛰었다.

김 : 로드프레스는 아주 자주 접하고 있다. 여러 뉴스와 인터뷰를 보면서 ‘인제천리길’에는 언제 오시나, 올 때가 되었는데? 하고 생각했었다.

ROAD : 늦게 와서 송구스럽다. 하하하. 많은 이들이 인제천리길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부분이 있다. 먼저 인제천리길의 시작에 대해 듣고싶다.

김 : 제가 몸이 아팠다는 이야기는 혹시 들으셨는가?

ROAD : 아니, 듣지 못했다.

김 : 제가 원래 산림농업을 하다가 2009년 뇌졸중이 왔다. 그래서 30개월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아주 긴 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동안 ‘전원(轉院)’이라고 하지않나?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누워있는동안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에 3개월을 준비해서 그 사이에 제주올레길을 걷게 되었다. 

4코스, 5코스, 6코스, 7코스의 절반을 걸었는데… 너무 좋아서 아껴서 걷고싶더라. 12년도에도 이어서 몇 코스를 걷고.

그렇게 걸으며 가수 김민기의 ‘천리길’이라는 노래를 즐기게 되었다. 가사에도 있듯이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고향에 천리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때부터 조금씩 인제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3년도에 방광암이 걸렸다. 당시 제주도 걷기축제에서 걷다 쓰러졌는데 그때 드는 생각이 “아, 내가 빨리 제주올레길도 완주하고 이 인제에 천리길도 하루 빨리 만들어야겠구나.” 라는 생각뿐이었다. 

인제천리길 함께걷기 행사 - 은비령길에서
인제천리길 함께걷기 행사 - 은비령길에서

ROAD : 역경 속에서 길을 찾고, 또 그 길에서 다시 역경에 부딪힌 셈이다. 그래도 그것을 이겨내며 만들어가셨다니 존경스럽다.

김 : 개별적으로 인제를 걸으며 꿈 꾼것은 2013년도이지만 본격적으로 후배들과 함께 시작한 것은 2015년 경이다. 이 길들을 기획하고 걸으며 코스가 400km 가까이 되었을때 정식으로 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키면서 ‘함께걷기’ 행사를 시작했다.

당시 첫 번째 함께걷기 행사는 2016년 4월 30일이었고 장애인들이 참여했다. 뇌졸중으로 입원시 병원에서 만난, 나와 뜻을 함께 하는 뇌졸중 환우 친구들 세 명, 지체장애인 2명, 그리고 각각 케어하는 이들이 참여하여 그렇게 행사의 첫 발자욱을 내딛었다.

ROAD : 보통 2010년도 초중반 당시는 둘레길 열풍이 전국적으로 불면서 각 지자체들마다 길을 만들겠다고 기획하고 막무가내로 추진하던 시기였는데 인제천리길은 그 속에서도 온전히 개인의 바램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다.

김 : 걸으면서 몇 가지 원칙을 수립하자고 했다. 

걷다보면 선택을 하게 된다. 갈림길에서 이 쪽으로 가면 길이 안좋지만 멋진 경관이 있고 다른 쪽으로 가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길의 순서는 사람 - 문화 - 경관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것이 길이지 경관을 보겠다고 짐승이 가는 길을 쫓는 것이 길이 아니다.

그리고 길을 건드리지 않겠다, 있는 길들을 그대로 활용하여 마을과 마을을 걷고 설령 잇는 길이 없다면 그게 도로라면 도로를 걸을지언정 인위적인 ‘조성’을 최대한 배제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예 끊기거나 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조성을 하더라도 그것을 최소화 하겠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그 뜻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과도 많은 이견이 있었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렇게 400km를 훌쩍 넘는 긴 천리길이 탄생하게 되었다.

국립공원 지역과 군사지역의 한계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직접 길 조성을 했다.
국립공원 지역과 군사지역의 한계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직접 길 조성을 했다.

ROAD : 현재 인제천리길은 그동안 다져온 시간이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단계인 것 같다. 여기서 궁금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인제’라는 단어가 주는 일종의 선입견, 즉 산이 높고 오지이고 교통이 불편할 것이라는 세간의 생각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 : 인제천리길은 물론 지형의 특성상, 길의 이어짐을 고려했을 때 불가피하게 높은 고개를 넘는 곳도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 

먼저 말했듯이 경관을 보기위한 목적으로 험한 등산을 하는 것을 최대한 배제했다. 초창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에게 난 말했다. “우리가 조성하는 구간 중 옛 보부상들이 다닌 길들이 있는데, 당신은 60kg짜리 소금 한 가마니를 지고 생선자반 몇 두릅을 들고 그 길을 오를 수 있었겠느냐.”고.

몸이 불편한 나 같은 사람도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생각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교통의 불편함, 그것이 걷는 이들에게 가장 큰 장애요소가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2017년부터 인제군 대중교통 혁신 의원회로 활동하면서 인제군을 두를 수 있는 교통망을 적극 추진하여 이루어내었다. 

바로 내일(6월 29일) 시승식이 열리고 7월 1일부터 운행에 들어간다. 인제천리길 460km 34개 구간 중 하나 빼고 모두 순환노선, 관통노선으로 버스가 다니게 된다. 물론 하루에 세, 네번 이지만 아예 버스가 없었던 곳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숙소같은 경우도 인제군 곳곳의 마을 펜션이나 산촌체험마을 등에 쉬고있는 시설을 활용하여 게스트하우스를 만들려고 설득중이었으나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추진이 잠시 멈춰있다. 그래도 현재 두 군데는 만든 상태이다. 코스 내에 다양한 주변 숙소를 개발, 협력하여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황골소금길을 즐기는 참가자들
황골소금길을 즐기는 참가자들

ROAD : 인제천리길이 이렇게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되었다. 그럼 좀 더 길에 대해서 소개한다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많은 이들이 인제천리길을 접하러 온다고 했을 때 부담없이 첫 걸음으로 걸을만한, 먼저 추천하고픈 길이 있다면?

김 : 1-1구간 서양강삼팔선길이 좋다. 소양강을 따라 38휴게소, 38대교를 지나며 수몰된 사단사령부, 미군부대 등을 만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이기도 했지만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에 소속된 지역이 인제 아닌가. 다양한 역사적 의미도 깨달을 수 있으며 강을 따라 걷는 평지길로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경치도 참 아름답다.

ROAD : 그렇다면 ‘경관’을 논한다면 어떤 길을 추천하고 싶으신지?

김 : 인제천리길 밴드에서 “명품 조망점 10선(Vista Point)”을 올려놨다. 먼저 추천하고픈 것은 새로이 조성된 ‘설악마주보길’ 이다. 내설악 전체를 마주보며 걷는다. 산맥쪽 임도를 타고 걸으면 안산, 가리봉, 중청, 공룡능선이 다 보인다. 설악산 안에서 보는 것 보다 더 잘 보인다.

설악마주보길
설악마주보길

그리고 고원임도길. 11월경을 추천하는데 안개가 깔리는 가운데 낙엽송이 바닥에 푹신히 깔린다. 그 걷는 맛이 일품이다.

또 하나 말한다면 읍내가던길도 좋다. 길을 걷다보면 자작나무숲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 전체의 산림의 역사를 다 느낄 수 있다. 산과 강, 이끼, 습지, 조림지 등 산림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곰배령길도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곰배령 풍경
곰배령 풍경

ROAD : 상상만 해도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떠오른다. 이런 길들을 하나하나 함께 걷는 행사도 현재 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김 : 인제천리길 함께걷기, 매주 토요일 인제천리길을 상/하반기 총 25회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12월, 1월은 눈꽃눈길 함께걷기 행사가 있다. 인제의 겨울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껴보라.

현재 인제천리길은 인제천리길 10선을 뽑아서 소개하고 있으니 인제천리길을 시작할 때 궁금하시다면 그 쪽도 참조하여 해당 구간의 함께걷기에 참가해 주시면 좋을 것이다. 

ROAD : 인제천리길이 그려나갈 미래도 참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당장 현실적으로도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 것 같다.

김 : 먼저 시급히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 재정자립일 것이다. 군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재정이 자립될 수 있어야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도 행동할 수 있고 다양한 전문 인력을 인제천리길에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상품을 기획, 판매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길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길에 가치를 더하기 위해 인제군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인제군이 400여 명의 독립군이 설악산 백담사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치르고 오세암으로 이동해 마지막을 장식했던 기록을 발견, 현재 100여 명의 독립군 부대원들의 실명까지 밝혀냈다. 이런 기록과 가치를 살리고 생태자원에도 관심을 기울여 인제군 인제천리길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화에 대한 정보도 모으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길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길이 걷는 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남아있을 수 있도록 노력을 다 할 것이다.

ROAD :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통해 인제천리길을 알게 될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전한다면?

김 : 길은 행복해야 한다. 걷는 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제 1의 원칙이었다. 인제천리길을 걷는 분들이 정말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년 35회의 함께걷기 행사를 단 한 번도 쉬지않고 진행했다. 그런 뚝심으로 인제천리길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걷기를 즐기시는 분들의 많은 방문을 기대한다.


김호진 대표와 유지보수팀 심세철 팀장
김호진 대표와 유지보수팀 심세철 팀장

멀게만 느껴지는 인제, 그래서 오히려 더욱 한 번 오면 쉬이 잊혀지지 않을 추억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마친 후, 사진을 찍기 위해 일어서니 정신없이 바쁜 사무실의 모습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인제군 구간에 새로이 개통되는 버스 노선과 시간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유지보수팀장인 심세철님은 보수할 구간을 확인하고 문의에 응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 쪽에 빨갛게 칠해진 채 놓여진 스탬프함과 노선 안내를 위해 만들어진 리본 묶음, 다양한 홍보물들이 이 길의 생명력을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푸르른 여름, 시원한 산과 계곡을 걷기를 원한다면 역시 강원도 내륙이 매력적이겠다. 

12선녀탕, 원대리 자작나무 숲, 백담사, 대암산 용늪, 미시령옛길과 곰배령…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제군의 자연생태 명소와 역사 명소를 만날 수 있는 그 길, 지금부터라도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

 


*바쁜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신 (사)인제천리길 김호진 대표님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인제천리길은 홈페이지(https://injecheolligil.modoo.at/)와 네이버 밴드(인제천리길 검색) 및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groups/1147043622435399 )를 통해 함께걷기 행사일정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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