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아트트립 - 일생에 한 번은 중세미술여행 - 김현성
이탈리아 아트트립 - 일생에 한 번은 중세미술여행 - 김현성

여행의 이유, 목표는 정말 여러가지가 있다. 

아주 거창한 것, 예를 들어 ‘나를 찾기 위해서’나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발견하기 위해서’ 등이 있을 수 있다. 또한 ‘현지의 피자가 먹고 싶었다.’거나 ‘그 영화에서 본 풍경이 인상적’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열망도 있다.

하지만 ‘한 작가의 작품을 보기위해’ 라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없는 목표이다. 그것도 그 작가가 중세시대의 성화를 주로 그린 작가이고 박물관 보다는 곳곳에 있는 성당 등에서 그 흔적을 더 발견할 수 있는 작가라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소원>, <헤븐> 등의 명곡으로 2000년대 초반의 감성 록 발라드를 들려주었던 가수 김현성씨는 음악, 예술, 문학 등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매우 깊게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가 2015년 에세이집을 내며 작가로 제 2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미술’에 빠져 한창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을 때, 중세 미술에서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에 빠졌다. 그는 책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미술사학자 H. W. 젠슨의 책이자 예술사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서양미술사>를 읽던 중이었습니다. 책에 조그맣게 삽입된 그림에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조토의 걸작으로 꼽히는 <옥좌 위의 성모 마리아>, 일명 ‘마에스타’라고 불리는 작품이었습니다.

수천 년의 예술사를 총망라한 책 안의 수많은 명화들 중에서 고흐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널리 알려진 작가와 작품이 아니라 들어본 적도 없는 중세 화가의 그림에 왜 내 안의 모든 의식이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운명의 짝을 알아본 것과 같다고 할까요.”

Giotto di Bondone “Ognissanti Madonna”
Giotto di Bondone “Ognissanti Madonna”

저렇게 순수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화가 조토 디 본도네의 흔적을 따라 여행하며 다시 한 번 만끽한 삶의 전율로 이어진다.

김현성씨는 마음이 지치거나 공허할 때마다 조토의 그림을 펼쳐 봤다고 한다. 전업 소설가가 되겠다고 매일 밤 고민하고 노력하고 지쳐가는 그에게 조토의 그림은 이상향이자 밤바다를 비춰주는 등대, 밤하늘의 별과 같았다.

결국 30대 후반, 작가의 꿈을 그만 두어야할까 깊은 고민을 할 때, 그는 그 조토의 그림을 직접 보러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러면서 혹시나 대상을 향한 애정이 개인의 판타지가 되어버리면 실제 그것을 마주했을 때 만족감보다 괴리감이 더 클 수도 있음을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조토의 그림은 전율과 함께 영적인 황홀감까지 가져다 주었다니, 정말로 ‘운명의 짝’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이 책 <이탈리아 아트트립 - 일생에 한 번은 중세 미술여행>은 그 조토에 대한 칭송과 헌사, 그리고 조토나 중세 미술을 모르는 이, 당시의 이탈리아의 시대상이나 역사적 사건을 모르는 이에게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는 친절함까지 담긴 책이다.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아시시에서 피렌체를 지나 파도바까지, 그 조토를 만나는 경로를 ‘조토 루트’라 부르며 그는 자신에게 거대한 삶의 영감을 준 이의 작품을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

Giotto di Bondone “Cacciata dei diavoli da Arezzo”
Giotto di Bondone “Cacciata dei diavoli da Arezzo”

작은 도시 아시시에 도착한 작가(김현성씨)는 조토의 그림의 소재 중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성 프란치스코와의 만남을 풀어나간다. 

아시시에 위치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2층에서 조토가 그린 프란치스코의 일대기를 다룬 28점의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당시 조토가 그려냈던 시대상과 위인의 묘사 속에서 그만이 새롭게 시도한(그리고 작가는 이후의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조토에게 표한 경의를 언급한다.) 작법을 통해 그가 얼마나 당대의 선구자였는지를 이야기한다.

Giotto di Bondone “Crucifix”
Giotto di Bondone “Crucifix”

이 책을 통해 피렌체에서 당대 각 작가들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림을 비교하며 읽는 것은 큰 재미가 있다. 종교적 엄숙함이나 의미를 떠나서 당시의 과도기적 측면에서 실제적인  몸의 묘사(감히 당시의 예수님을 말이다.)와 원근법에 대한 이해, 암영의 활용 등으로 보다 ‘사실적인’ 묘사를 한 조토의 작품은 확실히 다른 작품보다 눈길을 끈다.

중력의 작용에 의해 아래로 축 내려앉게 된 복부와 그에 대비되어 드러난 흉곽의 윤곽, 죽음의 색을 그대로 입은 피부는 당시 위광이 둥글게 그려진 머리의 묘사와 유려한 곡선, 주변을 둘러싼 성인 및 천사들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런 사실적 묘사가 오히려 상대에 대한 더욱 절대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감상, 작가는 이 사실에 대해 소설 <데카메론>의 보카치오가 조토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한다.

“그는 자연에 몹시 충실해서 그가 묘사하는 대상은 무엇이든 단순한 복제를 뛰어넘어 고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누구나 조토의 작품을 보면 사람들이 시각적인 기만에 빠져있고 그로 말미암아 자연 고유의 모습을 놓친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지막 도시 파도바에서 작가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을 찾는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28점의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을 그린 작품처럼 이 스크로베니 예배당에는 조토의 일생 일대의 대작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생애를 그린 38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Giotto di Bondone “Adorazione dei Magi”
Giotto di Bondone “Adorazione dei Magi”

예수의 부모가 되는 마리아의 탄생(요아킴과 안나의 이야기를 그린다.)에서부터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수태고지(천사가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장면), 예수의 탄생과 세례요한으로부터의 세례, 예루살렘 입성과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신과 십자가에 매달림까지 모든 내용을 담은 38점의 그림들은 종교를 떠나 ‘지식’으로 받아들이기에도 더 없이 알기쉬우면서 그 성화의 감동에 빠져들게 한다.

친절한 설명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 한다.
친절한 설명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 한다.

하나하나의 그림마다 한글제목과 함께 작가의 작품의 내용에 대한 안내와 각 작품에서 주목해야할 묘사나 의미 등을 설명하고 있어 더욱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어찌보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이 미술이다. 거기에서도 중세미술, 중세미술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작품이라는 것은 특히나 더욱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 한 지역을 여행하며 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과 예술사를 짚어간다는 것은 분명 큰 가치가 있는, 매력있는 경험일 것이다.

부제로 붙은 ‘일생에 한 번은 중세미술여행’의 문구처럼,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투자는 인생에 한 번쯤 있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는 이탈리아 맛집도, 아름다운 풍경사진도, 멋진 트레일에 대한 경험이나 정보도 없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간 여행에서 그런 것까지 남의 책을 들고가 확인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닌가? 

그렇게 자유로이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아시시나 피렌체, 파도바를 지날때 불현듯 이 책을 꺼내 그 내용을 읽어보며 중세의 대성당을 거닐어보는 풍경을 꿈 꿔본다.

 

저작권자 © 로드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