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싸의 포탈라궁
라싸의 포탈라궁

중국 망캉주의 어느 작은 마을, 그 곳에 사는 양페이는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신의 동생을 대신해 조카 셋을 키우는 동안 결혼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조카도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어느새 자신의 삶은 황혼을 바라본다.

"라싸까지 순례를 가고싶다. 내 동생은 그렇게 라싸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가지 못 하고 죽었지. 나도 그렇게 되면 안되겠지..."

조카 니마는 나이 많은 삼촌의 말을 듣고 자신이 삼촌을 모시고 순례길을 같이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그 선언은 마을에 굉장한 파장으로 울린다. 조카의 아들과 임신중인 며느리도, 염소와 소를 많이 잡아 늘 살생의 업을 짊어지느라 술로써 세월을 보내는 마을의 도축업자도, 자신의 집을 짓는 공사를 하다 죽은 인부 두 명에 대한 속죄를 할 기회를 찾던 마을 주민도, 그렇게 학교를 다녀야 할 어린 소녀부터 나이가 가장 많은 양페이까지, 망캉의 순례자들은 포탈라 궁이 있는 라싸까지 1,200km, 수미산(성산 카일라스, 칸린포체)까지 도합 2,500km, 1년의 여정을 떠난다.
 


전경륜을 돌리는 뒤로 오체투지가 이어진다.
전경륜을 돌리는 뒤로 오체투지가 이어진다.

소를 잡아 가죽을 무두질하고 고기는 말려 육포로 만들고... 만두를 잔뜩 빚는다. 그리고 나무를 쪼개고 다듬어 널빤지를 만든다. 그저 망캉 지역의 일상이라 생각했던 풍경이다.

​그러나 짐을 잔뜩 실은 낡은 트랙터가 퉁퉁 거리며 마을 앞의 도로를 출발하고 그 뒤로 순례에 참여키로 한 주민들이 무두질한 가죽을 앞에 걸치고 널빤지를 손에 낀 채 입으로는 진언을 외며 세 번 손을 마주치고 몸을 바닥에 누이고 머리를 땅에 대는 '오체투지'로 따라가는 갑작스러운 장면은 보는 이에게 큰 전율을 안긴다.

​그 고요한 일상이 일상 속 순례길의 준비였음을, 쪼갠 나무는 손에 끼는 널빤지요, 무두질한 가죽은 옷 앞에 댄 보호용 앞치마요, 빚은 만두는 저녁마다 먹을 식량이고 육포는 점심때 씹을 식량이다. 

​그렇게 라싸로 향하며 긴 여정을 시작하는 순례자들,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잔잔히 바라본다. 최대한의 간섭을 줄인채, 또 다른 제 3의 순례자가 되어 그 모습을 쫓는다.

하루 약 10km의 여정이 지나면 야영을 준비한다.
하루 약 10km의 여정이 지나면 야영을 준비한다.

오체투지를 반복하며 라싸까지의 가는 여정은 우보천리의 그것과 같다. 일반 걸음보다 몇 배는 느리고 육체적인 고통은 가늠할 수 조차 없다. 거기에 늘 천막을 치고 눕고, 다음 날 다시 짐을 싸고 싣는 고된 야영도 더해지지만 분명 아주 조금씩이나마 라싸까지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여정 안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고 많은 위로와 나눔을 함께 하며 순례자들은 라싸에 도착한다. 

​라싸까지의 여정안에 일어난 일들이야 글로 적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카메라 또한 그 1년여의 여정을 단 두 시간 이내로 압축해 내었으니 우리가 화면을 통해 본 것의 수백, 수천배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산사태로 절벽위에서 떨어진 바위에 일행이 다치기도 하고 앞서 말한대로 새 생명이 태어나기도 한다. 뒤에서 교통사고가 나 트랙터는 버려지고 무거운 짐칸을 남자들과 여자들이 번갈아 끌며 더욱 험난해진 여정을 노래로 잊어보기도 한다.

가파른 오르막, 짐칸을 끄는 순례자들
가파른 오르막, 짐칸을 끄는 순례자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전율을 느낀 부분이다. 힘들게 트랙터에서 짐칸을 떼어낸 순례자들은 남성, 여성으로 나뉘어 여성들이 뒤에서 오체투지로 따라오는 동안 힘들게 줄로 끌며 짐칸을 끌고 도로를 지난다. 얼마 정도를 끌고 간 후 남성들은 다시 짐칸을 떼어낸 자리로 되돌아가 짐칸을 끄느라 못 한 오체투지를 하며 따라온다. 

​"저렇게 사고가 났으니 어쩔 수 없겠다."라고 생각한 내 "타협"이 여지없이 박살난 순간이다. 

​대부분의 티벳 순례자들이 목표로 하는 라싸의 포탈라궁에 도착해서도 이들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평생 한 번 올 수 있을까 한 여정, 이대로 수미산(카일리스 산)까지 1,300여 km를 더 이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여비가 모두 떨어진 이들, 결국 남자들은 세차와 공사판 등 일자리를 찾아 일을 하고 여자들은 절을 한다. (숙소의 여사장은 숙박비를 받지 않고 돈도 얼마간 쥐어줄테니 자신을 대신해 10만배를 해달라고 했다.)

​몇 달을 일을하고 돈을 다시 모은 순례자들은 마을 망캉에서 라싸보다 더욱 더 멀리 떨어진 성산(聖山)을 향한다.

그 혹독한 여정중에 결국 양페이는 천막 안에서 숨을 다 하고 높다랗게 날며 날개를 펼친 독수리들의 비행과 바위 위에 앉은 승려들의 독경은 그가 티벳의 장례풍습인 '조장(鳥葬, 천장天葬이라고도 한다.)'을 통해 하늘로 올라갔음을 말해준다.

​먹먹한 분위기가 가득한 천막 안에서 양페이의 조카는 남은 이들에게 덤덤히 이야기한다. 자신의 삼촌이 조카들을 키우느라 결혼도 못했지만 마을 사람 누구와도 말다툼 한 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선량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평생 소원인 라싸 순례를 마치고 마지막 여정인 성산인 칸린포체를 가는 길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는 것을.

​여기서 세 번째 전율을 느꼈다.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막 여정인 칸린포체를 앞두고 숨을 거두었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안타까운 일인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정을 수치로 환산해 100을 본다면 90을 넘긴 시점에서 끝났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니마의 말은 내 예상을 깼다.

"그 기슭에서 숨을 거두셨다니 참으로 복된 일이야. 삼촌의 업은 그대로 기슭을 따라 성산까지 이어질테니..."

그리고 양페이 삼촌이 살아생전 무리의 맨 앞에 서서 돌렸던 전경통(전경륜)을 쥐고 돌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고 모든 부분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사고가 나거나 피해를 입더라도, 누군가 나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더라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행한다...

지금 세상에서도 이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곳, 그게 가능한 이들이 하는 그 순례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묵묵한 여정이 내 마음을 씻는다.
그 묵묵한 여정이 내 마음을 씻는다.

중국의 장 양 감독은 라싸로 향하는 도로(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10선에도 선정되었다.)에서 한 노인과 부부, 그리고 순례길에서 태어난 4개월이 된 영아로 이루어진 순례자를 만난 후 "그들의 동기를 이해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순례길을 걷는 여정을 촬영하기 위해 여러 명의 캐릭터를 구상하며 각 마을을 돌아다녔고, 마치 신의 도움처럼 한 마을에서 그가 구상한 모든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임신중인 젊은 부부까지도.

​그 마을 사람들은 영화의 주제나 스토리도 모른채 그저 순례길을 가면 된다는 한 마디에 모두 동의했고 그렇게 순례의 여정을 찍게 되었다. 가을에는 농장의 일을 돕기위해 촬영을 중단하고 돌아가는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본도, 지침도 없고 전문배우도 없는 이 여정은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로 생생하게 기록되었다.

​다른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오체투지'나 티벳인의 성지순례를 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망캉주에서 라싸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 칸린포체까지 이어지는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지극히 뚜렷한 목표'를 가진채 정진해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특히 만나는 이들과 나누는 차 한잔, 덕담과 저녁의 천막 안에서의 진솔한 대화와 진언암송은 더 붙일것도 없는 그 자체의 담백함 만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낀 먼지를 씻어내주고 있다.

부모를 따라 나선 가장 어린 순례자 갸초
부모를 따라 나선 가장 어린 순례자 갸초

영화를 통해 그 기나긴 여정, 기나긴 길을 보며 정말로 느린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생기는 것은 필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이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 '종교적 목표'와 '업장소멸'과 '타인에 대한 사랑과 베품, 타인을 위한 기도'를 떠올려 본다. 그것을 갖추지 못한 채 그 길을 가는 것은 단순한 풍경을 통한 기쁨으로밖에 남을 수 없을테니까.

​하지만 길이 가진 '마법'을 믿는 필자는 분명 그 길을 쫓아감이 우리에게 또 다른 목표를 만들어주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깨달음을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그 여정을 그려보고 저장해 본다.

​천막안에서 시작되는 진언의 암송 속에 올라가는 크레딧을 보며 내 마음 속 얼룩진 때를 씻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옴마니 반메훔(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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