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누리길 경기도 구간의 끝자락인 신탄리역에서 강원도 구간의 시작점을 지나 백마고지까지
- 즐거운 여정 속 길 위에서 만난 인연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202호 두루미도 관찰

1월 12일, 희끗희끗 눈발이 휘날린다.

​길 여행 전문 온라인 뉴스 로드프레스(Roadpress)에서 만든, 걷는 이를 위한 걷기여행 앱 '길잇고'의 성능 등을 직접 확인하기위해 평화누리길 12코스 대광리역을 찾았다. 앱을 토대로 인근의 구간을 확인한 후 대광리역에서 신탄리역까지 구간을 녹화(걷기 기록)하며 걸었다.

신탄리역의 모습. 현재는 경원선 공사로 해당구간에 기차대신 셔틀버스를 운영중이다.
신탄리역의 모습. 현재는 경원선 공사로 해당구간에 기차대신 셔틀버스를 운영중이다.
경기둘레길 스탬프함
경기둘레길 스탬프함

신탄리역에서 경기둘레길의 새로운 스탬프함도 확인해본다. 걷는 내내 바람을 맞아 얼은 몸을 푸느라 잠시 쉴 때, 문득 평화누리길 12코스 통일이음길의 종점인 역고드름이 떠오른다.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마침 날리던 눈발도 잠시 멈췄다.

​"여기서 역고드름을 가려면 어떻게 가면 되는지요?"

​한 어르신이 말을 거신다. 방향과 표식을 안내하노라니 어차피 목적지가 같기에 자연스레 같이 걷게 되었다. 인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셨다는 어르신은 '역고드름'을 본다는 그 목적 하나로 이 긴 여정을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오셨다고 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 간석역에서 동두천역까지 2시간 10여분, 동두천역에서 경원선 셔틀버스를 타고 신탄리역까지 또 오는데 여차저차하여 50여분, 도합 세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렇게 와서 역고드름을 보고 역순으로 돌아가신다니, 그 당일의 여정에서 차지하는 이동시간을 감내하며 찾아오신 열정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인천에서 오신 어르신과 함께 걷다.
인천에서 오신 어르신과 함께 걷다.
잡힐 듯 하다가도 금새 멀어지는 통일
잡힐 듯 하다가도 금새 멀어지는 통일

신탄리역에서 역고드름까지 가는 길은 잘 포장된 길이다. 어르신과 함께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서울둘레길과 인천둘레길, 북한산둘레길 등을 완주하셨다는 어르신은 무더운 여름날 용마, 아차산 방면을 걸으면서 느꼈던 더위를 잊을 수 없었다고 하신다. 이야기가 늘어날수록 옹진군의 장봉도, 태안해변길 등 각자 걸었던 길들의 접점이 늘어나며 이야깃거리도 많아진다.

​혼자가면 찬 바람 속에서 낙엽마저 다 떨군 그 길을 걸어야 했으리라. 의외로 거리또한 신탄리역에서 3.7km 가량, 50여 분이 걸리는 길이다. 왕복으로 잡아도 꼬박 두 시간의 심심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안도의 느낌은 어르신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혼자 안 걷니 좋네요, 거 참."

역고드름의 자태
역고드름의 자태
빙주(氷柱)의 자태에 할 말을 잃는다.
빙주(氷柱)의 자태에 할 말을 잃는다.

드디어 역고드름에 도착했다. 그 빙주의 자태가 정말 황홀하다. 바닥께는 얼음으로 뒤덮여있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탄약고로 쓰던 이 폐터널은 미군의 폭격으로 생긴 균열에 맺힌 수분이 떨어지면서 얼어붙어 매년 겨울, 이맘때쯤이면 굉장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게다가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바로 철원군과의 경계인지라 평화누리길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지점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가진다.

​어르신의 기념촬영을 도와주고 사진으로 몇 컷 찍는다. 걷는 내내 평화누리길 구간에서는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지만 차량을 타고 이 곳까지 찾은 관광객이 몇 있었다.

참으로 멋진 겨울방학이다.
참으로 멋진 겨울방학이다.

어르신과 기자 옆에서 한 참을 역고드름의 생성방법, 이 곳의 유래 등을 손자에게 설명해주시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니 주차된 차에서 식사를 준비 중이다.

​"할아버지, 차에서 어떻게 불 피우려고 컵라면을 가져왔어요?"

​"이거 봐, 이렇게 뜨거운 물을 미리 담아왔지."

​컵라면을 손에 쥐고 식사 준비를 하는 그 모습이 정겹다. 손자의 나이를 생각해서인자 마침 컵라면도 순한 맛이다. 기자임을 밝히고 허락을 받은 후 그 따뜻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어 손자와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나온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마침 답사날은 기자의 아들도 방학을 맞이한 방학식날이었다.

​나도 함께 이 곳을 오면 좋지 않을까? 컵라면과 함께... 간만에 아버지 노릇을 한 번 해 볼까?

좋은 것을 배웠다. 길 위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 - 누군가에겐 아주 큰 의미는 아닐지라도 - 그 잔잔함에 지금의 부족한 모습, 놓치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차탄천 경원선 교량
차탄천 경원선 교량

역고드름을 감상한 후 내려와 약 200여 m를 북쪽으로 나아가면 드디어 차탄천 교량이 나온다. 이 교량이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이다. 평화누리길 통일이음길의 최종 도착지로 쉼터와 스탬프함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왼성된 이 경원선 교량, 그 끊어진 모습이 주는 을씨년스러움은 '전방지대'라는 지역적 위치와 맞물려 보는이에게 무언가 아련함을 가져다 준다.

​어르신은 이것도 기념이라며 부스에서 평화누리길 여권을 꺼내 도장을 찍는다.

​"어르신, 여기서 다시 3.7km를 되돌아 신탄리역을 가는 것 보다 표지판 보니 북쪽으로 3.1km만 가면 백마고지역을 만나요. 강원도쪽 평화누리길이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왔던 길보다 새롭게 더 걸어보는건 어떨까요? 어차피 백마고지역도 셔틀버스가 똑같이 운영하니 선생님은 그대로 타고 동두천역으로 가면 되고 저는 차를 세워둔 대광리역으로 가면 되요."

​"글쎄, 아까 신탄리역에 내려서 버스기사에게 물어보니 역고드름은 백마고지역이 더 가깝다고는 하더라고요. 백마고지역에서 내려 걸어내려와 역고드름 보고 신탄리역으로 가도 되었겠다는 생각이네요. 그래요 이대로 쭈욱 백마고지역까지 걸어가봅시다. 나도 처음 걷는 길이네."

​어르신과 새로운 길을 걸어보기로 합의하고 차탄천 교량을 지난다.

강원도 철원군 평화누리길 1코스 금강산길의 안내표지판
강원도 철원군 평화누리길 1코스 금강산길의 안내표지판

이제 강원도에 들어섰다. 바로 철원군 평화누리길 1코스, 금강산길에 대한 안내를 담은 표지판을 만난다.

​평화누리길 1코스는 13.8km로 이 곳 차탄천 교량을 출발하여 백마고지역, 철원노동당사를 지나 대위리 검문소까지 걷는 구간이다. 걷는 중간중간에 소이산과 학저수지 등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왜 하필 금강산길일까? 강원도 고성 위쪽의 금강산은 동해안쪽인지라 이 강원도의 동쪽 끝에서 붙여질 이름이 아닌데 말이다. 혹시 이대로 금강산까지 나아가자는 의미로 붙여졌을까? 그래도 차라리 마지막에 붙였더라면 더 좋았을 듯 하다.

​"...과거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의문은 안내판을 자세히 읽어보고나서 풀렸다.

길이 완만하게 휘어진다. 너른 철원평야처럼 해당구간도 시원스레 걷기 좋다.
길이 완만하게 휘어진다. 너른 철원평야처럼 해당구간도 시원스레 걷기 좋다.
철새들이 넘나든다. 노래 '임진강'이 생각난다.
철새들이 넘나든다. 노래 '임진강'이 생각난다.

철원군 평화누리길 1코스 금강산길은 그 시작부터 철원평야의 너른 풍경을 축소해 놓은 듯 하다. 넓게 펼쳐진 논과 밭을 따라 길은 걷기좋게 이어져 있다.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맛이 제법이다. 철이 한겨울이라 그렇지만 새싹이 돋아나고 신록이 되살아날 때 즈음이면 정말 아름답고 고즈넉한 길이 아닐까.

​철새들의 날아오름, 그리고 군집 비행에 어르신은 감탄이다.

​"아이구, 저것 봐요. 인천에서 하도 오래 살다보니 이젠 저런 풍경도 정말 오래간만이네. 장관이예요."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들을 보니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노래 '임진강'이 생각난다.

(지난 기사, '길과 음악' 물새는 넘나드는데... 임진강(イムジン河) by 포크 크루세이더즈( フォーク・クルセイダーズ)

봄에 다시 오리라.
봄에 다시 오리라.

철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예전에 사실 저 신탄리에서 고대산 등산을 간 적이 있었어요. 고대산에서 금학산따라 능선으로 이어져 철원여고 뒤로 내려오거든. 그렇게 코스가 있어요.

그 때 고대산 정상에 올랐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양반이 계시더라고. 그래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참 이야기 하다가 '저 곳이 우리 소대장이 전사한 데', '저 쪽이 선임하사가 묻힌데' 하고 가르쳐주시더라고. 여기가 백마고지하고도 지척이고 얼마나 격전지였겠어. 그렇구나... 싶더라니까. 한참은 된 이야기네."

​이야기가 이어진다.

​"내가 65년에서 68년까지 군생활 했지요. 그런데 하필 68년 1월달에 김신조가 내려오네? 그래서 전체적으로 군대에서 비상이 걸렸고 아주 난리였잖아요. 군생활을 3~4개월을 더하고 제대했다니까? 김신조때문에 제대 늦어졌다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저예요."

​평화누리길에서 그 과거의 이야기들을 소회하시는 모습, 어쩌면 평화를 누리는 지금도, 더욱 큰 평화를 그려나가야 할 미래에도 이런 과거의 이야기들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평화누리길에서 만난 어르신, 그리고 함께 걸으며 듣는 어르신의 추억이 그 길의 이름에 무게를 더한다.

천연기념물 제202호, 두루미
천연기념물 제202호, 두루미
두루미 세 마리가 낙곡을 먹으며 경계중이다.
두루미 세 마리가 낙곡을 먹으며 경계중이다.

길이 잠시 언덕을 오를 때 쯤, 특이한 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가 상당히 크다. 벌거벗은 밭두렁 위로 길고 검은 목 셋이 올라왔다가 내려간다.

​"두루미다... 어르신, 두루미예요!"

​"세상에, 두루미네... 저 귀한 걸 이렇게 가까이 보네."

​천연기념물 제202호인 두루미는 '학(鶴)'이라고도 하는 조류이다. 이 철원군과 연천군, 파주시 등 접경지역에서 겨울에 발견되는 철새이다. 게다가 이 맥마고지역 부근엔 철원 두루미마을도 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실제로 '살아있는 개체'로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처음이다. 생각외로 큰 몸집에 깜짝 놀랐다. 걷다가 멈춘 여행객 두 명을 경계하며 서로 소리를 내어 알리면서도 낟알을 먹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 행동을 한참 바라보다 줌인하여 사진에 담는다. 화질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아주 귀한 생물을 봤다는 기쁨이 크다.

​결국 여행자들을 의식한 두루미 세 마리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날아오른 저편으로 백마고지역이 보인다.

잔뜩 흐린 하늘, 아니나다를까 곧 다시 눈이 쏟아졌다.
잔뜩 흐린 하늘, 아니나다를까 곧 다시 눈이 쏟아졌다.
백마고지역에서 동두천역까지, 경원선 각 역을 운행하는 셔틀버스(1,000원)
백마고지역에서 동두천역까지, 경원선 각 역을 운행하는 셔틀버스(1,000원)

백마고지역에 도착한다. 마침 떠나려는 듯 우리 둘을 본 셔틀버스가 시동을 건다. 부리나케 백마고지역과 셔틀버스를 사진에 담고 오른다.

​경원선 기차 대신 공사기간동안 경원선 각 역을 경유하는 직행 셔틀버스는 1,000원의 교통비를 낸다. 교통카드도 사용 가능하다. 버스는 각 역만 경유하는 직행과 경로내 버스정류장을 모두 들리는 완행, 두 종류가 있으므로 평화누리길 구간내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할 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자리를 잡고 난 후 여태 걸어온 길을 다시금 눈으로 되짚으며 대광리역까지 되돌아간다. 그래도 오늘 꽤나 걸었다는 생각이다. 신탄리에서 만난 어르신이 아니었으면 조금은 쓸쓸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동두천에서 내리는 어르신에게 인사를 건넨다.

​"정말 재미있게 잘 걸었습니다. 어르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주먹을 서로 부딪히며 이별을 고하고 대광리에 내려선다. 눈발이 점점 세진다. 걸었던 길 위로 새햐얗게 쌓이기 시작한다. 지금의 기록은 추억으로 저장하고 다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걸으라는 듯, 그렇게 길은 새하얗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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