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길에서 목표를 찾으려는게 지금 우리의 목표가 아닐까?'라는 날카로운 울림
- 결국 수천개의 길이 존재, 모든것을 내려놓고 그저 묵묵히 걷는 행위의 진실됨에 대하여

첫 날부터 제대로 비를 맞는 한츠 페터
첫 날부터 제대로 비를 맞는 한츠 페터

한츠 페터, 일명 '하페'는 독일의 유명한 코미디언이다. 방송과 무대를 누비며 스탠딩 코미디로 인기를 끌던 그는 36세의 나이에 과로로 인해 쓰러지고 만다. "무조건 3개월은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이라는 의사의 약속에 따라 그는 푸욱 쉬기로 한다.

하지만 그냥 쉬면 또 좀이 쑤시는 법, 매니저의 걱정을 뒤로 하고 즉흥적으로, 그저 몇가지 단어에 끌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한다.


'나의 산티아고' 포스터. 독일 개봉 원제는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나의 산티아고' 포스터. 독일 개봉 원제는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기존에 감상했던 여러 산티아고 순례길 관련 영화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 중 "The Way"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 두 편을 비교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표'에 대한 추구는 다르지만, 결국 그 길에서 걷는 이들이 도달하는 목표가 '동일'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한츠 페터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다. 어렸을적 어머니를 여의고 가졌던 신에 대한 물음, 혹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흔히 머나먼 여정을 앞두고 하는 상투적인 생각, 조잡한 자문자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이 길을 걷고, 무엇을 깨달아야 한다.'는 목표 자체가 그 길을 가장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중간에 매니저에게 전화로 '돌아가겠다!'고 포기선언을 하며 너무 외롭다는 그. 같이 걷는 누군가가 없느냐는 질문에 "있지! 브라질에서 온 색골녀, 칼텐키르헨 출신의 싸움닭 부부, 바이에른 출신의 쇼핑녀가 다야!"라며 실망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포기를 선언하고 다 내려놓는 그날, 그 길을 이어 걷게 되는 이유를 만난다.

그는 그 길에서 지치고 실망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 길에서 지치고 실망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여정의 첫날, 첫 도장을 받기위해 줄을 서다 티격태격한 기자 레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앞서 들른 등산용품점에서 도움을 받은 스텔라를 만난다. 그리고 그 길의 중간에서 친구와 함께 걷던 '시리'를 만난다.

​그 넷이 우연치 않게 다 모인 날이 바로 그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포기하던 그 날. 하지만 포기의 작별인사는 시리가 먼저 꺼낸다. 다리를 다치게 되어 여정을 마무리 할 수 없게 된 것. 그리고 그렇게 서로 저녁식사를 함께 할 때, 레나는 이 길에 대한 '목표'가 무엇인가, 그리고 '실망감'을 토로한다.

​"여기서 자신 과연 뭘 하고 있는지 의심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누구, 신을 만난 사람은 있어?"

​그런 목표가 자신을 가장 걷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깨닫는 것은 그 후의 일이지만, '시리'는 뒤늦게 포기의사를 밝힌 한츠 페터에게 '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응원을 남긴다.

​언제나 티격태격하는 레나, 그리고 늘상 선문답 같은 답변으로 '달관한 척' 걷지만, 실은 가장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얻을 수 없는 답을 얻기위해 방황하는 스텔라... 그 셋 중 가장 먼저 포기할 것 같았던 한츠 페터는 모두의 아픔과 슬픔을 읽으며 결국 그 길에서 온전히 이루고자 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좌로부터 레나, 한츠 페터, 스텔라
좌로부터 레나, 한츠 페터, 스텔라

영화의 가장 마지막, 함께 의지하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 한츠 페터의 독백은 매우 인상적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카미노)를 걸을 수 없는 이들에게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이 길은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길은 하나가 아니라 수천개가 있다. 허나 누구든 길에서 하는 질문은 같다. '나는 누구인가.'"


이 영화는 기존의 다른 여러 산티아고 순례길의 영화와 다를 바 없다. 사실 대부분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영화는 동일한 소재와 전개를 가진다. 아픔을 가진 이, 혹은 치유할 필요성을 느낀 이, 삶에 쉼표를 찍고 싶은 이들이 그 길을 걷고, 또 비슷한 이들을 만나고 결국 그렇게 자신들의 목표가 큰 것이 아님을 깨닫고 마지막 도착지에서 환희, 기쁨, 혹은 행복을 맛 보는 것. 영화의 마지막에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의식이 들어가는 것 또한 이 길을 다룬 영화들이 피해갈 수 없는 마무리 연출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5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여행기를 영화화한 이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영화가 같은 포맷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그 길을 걷는 이들의 생각과 그 길에서 일어나는 일들, 치유와 회복이 뻔하다기 보다는 숨김없이 사실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 길에서 무언가 '목표'를 찾는것이 지금 우리의 (잘못된) 목표가 아닐까?라는 레나의 말은 날카롭다.
이 길에서 무언가 '목표'를 찾는것이 지금 우리의 (잘못된) 목표가 아닐까?라는 레나의 말은 날카롭다.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오는 동안 가진 상처의 깊이가 다 다르고 그 상처를 낫기 위해 찾아야 하는 약이 다 다르겠지만 천가지 만가지의 길에서 결국 '인간'이 묻는 질문과 얻기위한 질문은 동일할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미 다른 영화나 책을 접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모범적인 답안'은 될 수 없을지라도 '오답'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답안을 찾기 위해서는 그게 어떤 길이건 홀로 걸어보라고 이야기한다.

​혹자는 주인공인 한츠 페터가 홀로 걷지 않는데 무슨 말이냐며 반문할지 모른다. 홀로 걸으라는 것은 끝날때까지 묵언수행과도 같이 고난의 여정을 가라는 것이 아니다.

뚜렷한 목표의식이나 억지로 만들어낸 방식을 거두어내고 순수하게 걷기에 집중해보라는 말이다. 그렇게 홀로 자유롭게 걸으면 그 하얗게 펼쳐진 여정에 새겨지는 검은 발자국들이 뿌리가 되고 기둥이 되고 수많은 가지가 되어 종국에는 열매가 달리는 나무가 될 것이다. 그렇게 걷는 와중에 '그 길'은 나머지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관계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 열매는 회복과 치유가 아닐까?

좀이 쑤시는 트레킹 마니아들을 안달나게 만드는 사진
좀이 쑤시는 트레킹 마니아들을 안달나게 만드는 사진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사회적 활동, 여가활동 등에 제약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랜선투어'가 인기라고 한다.

물론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큰 시간과 어느 정도의 예산을 들이지 않으면 쉬이 갈 수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이지만, 이렇게 그 길에 대한 영화를 통해 추운 겨울날 자신만의 '랜선 걷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발걸음이 그 길을 직접 걷지는 않더라도 마음이 움직이며 그 장면과 장면마다, 대사와 대사마다 함께 한다면 끝나는 마지막,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영화이다.

​참으로 잔잔한 영화, 솔직한 영화이다. 길을 걷는 모습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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